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 전하는 혁명적 메시지

by art.manager 2025. 5. 1.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걸작 「1808년 5월 3일」(스페인어: El Tres de Mayo de 1808)은 단순한 역사화가 아닙니다. 이 그림은 19세기 유럽 회화에서 보기 드물게 폭력의 실체를 전면적으로 다룬 작품이며, 억압에 저항하는 인간의 절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전쟁, 혁명, 자유에 대한 이 작품의 함의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역사적 배경

  1. 스페인의 혼란, 민중의 저항
    180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침공하고 국왕을 폐위시킨 후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왕위에 앉힙니다. 이에 분노한 마드리드 시민들은 5월 2일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다음 날 프랑스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규모 처형을 감행합니다. 고야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두 점의 대작으로 남겼는데, 바로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입니다.
  2. 고야는 목격자이자 예술가
    고야는 이 그림을 당시 정부의 의뢰나 명령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의 고통과 항거를 예술을 통해 역사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 점에서 「1808년 5월 3일」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인간의 기록이자, 개인의 양심이 드러난 시각적 증언입니다.

 

시각적 구성과 상징성

  1. 빛과 어둠: 구원의 부재
    그림은 밤중의 공개 처형 장면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남성은 흰 셔츠를 입고 두 팔을 벌린 채 처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남성에게만 강한 조명이 집중되며, 다른 인물들과 대조됩니다. 이 조명은 신성함이나 희망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폭로하는 ‘심문등’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구원의 빛이 아닌, 심판의 빛이 비치는 셈입니다.
  2. 팔 벌린 남성: 현대적 순교자
    이 남성은 예수의 십자가 자세를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손바닥에 보이는 상처는 못자국을 상기시킵니다. 고야는 이 인물을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현대의 순교자’로 형상화하면서, 전통적인 종교화를 뒤집어 새로운 민중의 성인을 제시합니다. 그는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잔혹함 앞에 희생된 존재입니다.
  3. 익명성 속의 가해자
    프랑스 군인들은 등만 보이며 철저히 개별성이 지워져 있습니다. 이는 억압적 권력이 얼마나 비인격적이며, 명령 체계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이 사라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겐 얼굴도 없고, 감정도 없습니다. 오직 명령과 총구만 있을 뿐입니다.

 

고야가 전한 혁명적 메시지

  1. 예술은 침묵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고야가 예술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표현한 사례입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궁정화가들이 권력을 미화하거나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과 달리, 고야는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섰습니다. 이는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2. 집단 폭력에 대한 고발
    고야는 이 그림에서 단순히 프랑스 군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권력이든 군중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것은 비극을 낳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고야는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보편적 인간성의 회복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공포로 눈을 가린 이들, 쓰러진 시신들… 이 모든 요소는 특정한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쟁의 보편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이 장면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1808년 5월 3일'은 한 사회의 고통을 정직하게 응시한 작가의 양심이자, 폭력과 억압에 대한 강력한 시각적 저항입니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말합니다. 역사는 침묵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외친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그리고 지금도 전쟁과 억압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고야의 외침은 계속해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 앞에서 외면하지 않을 용기이기도 합니다. 고야는 그 용기를, 한 점의 그림에 담아 우리에게 건넸습니다.